안중근의 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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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안중근에 대해 시간을 할애하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안중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우리 역사의 얼과 정신이 담긴 그에 대해 써보고자 합니다. 블록체인에 그를 남겨 왜구당 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오늘부터 쓰고자 하는 글은, 안중근이 옥중에서 쓴 글을 엮은 책 《안중근의 말》의 요약입니다. (책 전체를 요약하진 않습니다.)


1

1879년 9월 2일, 황해도 수양산 아래에서 한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중근, 자는 응칠. 중근은 성질이 가볍고 급해 지은 이름이다. 응칠은 가슴과 배에 점이 7개여서 붙였다.

할아버지 존함은 안인수며, 성품이 어질고 후덕하셨다. 살림이 넉넉해 도내에 자선가로 널리 알려졌다. 할아버지는 일찍 진해 현감을 지냈으며, 아들 여섯과 딸 둘을 두었다. 태진, 태현, 태훈, 태건, 태민, 태순 6형제는 모두 글을 잘했고 너그러운 성품이었다. 그 중에도 내 아버지 태훈은 재주와 지혜가 뛰어나 8, 9세에 이미 사서삼경을 깨우쳤다. 13, 14세에 과거 공부와 사륙병려체의 문장을 익혔다.

아버지가 《자치통감》을 읽을 때, 선생님들이 책을 펴고 글자 한 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글자에서 열 장 뒤에 있는 글자를 아느냐?”
“알 수 있습니다. 그 글자는 필시 하늘 천(天)일 것입니다.”
살펴보니 정말 그대로였다.
“이 책을 거슬러 올라가도 알 수 있겠느냐?”
“예.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번 물었고, 아버지는 전혀 틀리지 않았다. 보는 이마다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고 신동이라 불렀다.

중년에 과거에 급제해 진사가 되고, 조마리아에게 장가들어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으시니 맏이가 나 중근, 둘째는 성녀, 셋째는 장근, 넷째는 공근이었다.

2

1884년 갑신년. 박영효가 나라의 형세가 위태롭고 어지러운 것이 걱정스러워 나라를 혁신하고 국민을 개명시키고자 준수한 청년 70여 명을 선발해 외국 유학을 보내려 했는데, 아버지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슬프구나. 간신배들이 박영효가 반역을 저지른다며 모함해, 병사를 보내어 그를 잡으려 했다. 그는 일본으로 피신했고, 동지와 학생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귀양을 갔다. 아버지는 몸을 피해 고향으로 돌아와 숨어 살며 할아버지와 의논했다.
“나랏일이 날로 잘못되어 가니 부귀공명은 바랄 것이 못 됩니다.”
이어 가족에게 말했다.
“산중으로 들어가 밭이나 갈고 고기나 낚으며 세상을 마치는 것만 같지 못하다.”

살림을 모두 정리하고 80여 명이나 되는 대가족을 이끌고 신천군 청계동 산속으로 이사를 갔다. 지형은 험준하지만 논밭이 갖추어 있고 경치가 아름다워 별천지라 할 만했다.
조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사당에 들어가 8, 9년 동안 학문을 익혔다. 열네 살이 되던 무렵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나는 애통한 나머지 병을 앓다가 반년이 지난 뒤에야 몸을 추슬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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