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의 3D효과

in zzan2 months ago

세찬 빗줄기가 한참이나 멈출 줄을 모르고 퍼부었다.
더 이상 다른 말로 표현을 하기 어려웠다. 하늘에서 소방헬기로
물을 퍼붓는 장면이 떠올랐다.

쏟아지는 빗물이 유리창에 뽀얀 안개를 만들었다. 실내는 외딴
섬처럼 고적했다. 아무도 문을 여는 사람도 지나가는 차도 없는
적막한 거리에 빗소리만 요란했다.

아무도 없는 가게를 지키는 일이란 지루함을 넘어 무력감으로 몰아
넣는다. 신문을 뒤적이다 마음에 안 드는 정치인들 욕도 하고 잘
나가는 스포츠 스타 연봉 얘기에 인기가 치솟는 연예인 얘기도 하며
시간을 때우는 것도 한계가 있다.

눈물이 흐르도록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는데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처음엔 누가 중얼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생선이나 과일
트럭의 확성기에서 들리는 소리로 혼동하기도 했다.

차는 보이지 않았고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자세히 들어보니 무슨
노래 같기는 한데 중간 중간 끊어지고 그나마 빗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소리는 좀 더 가까이 오고 그제야 그 소리가 무슨
소린지 알 수 있었다.

술에 잔뜩 취한 남자가 온 몸이 흠뻑 젖어 물이 떨어지는 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남자는 흡사 절지동물을 연상하게 했다. 셔츠는 풀어
헤치고 길게 내려온 머리는 얼굴을 반도 더 가렸다. 한 걸음 앞으로
나가는 듯하다 두어 걸음 뒤로 걷는 것처럼 보였다.

잊지는 마라~야지 만날 수 업써어도~~

노래는 시골 종점다방 고장 난 전축에 올라앉은 엘피판처럼 똑같은
소리를 되풀이했다.

세찬 빗줄기도 그 남자를 막을 수는 없었다. 가로등 불빛이 샤워기처럼
빗줄기를 뿜고 어둠이 거리를 덮은 뒤에도 그 남자의 노랫소리는 비오는
거리를 떠돌았다.

며칠 뒤 모텔 사장이 길에서 그 남자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방값은
선불인데 몇 달을 잘 있던 사람이라 하도 사정이 딱 해서 편리를 봐
줬더니 한이 없다며 더 이상은 안 되겠으니 당장 밀린 방값 내고 방
빼라며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뒷말이 무성했다. 선배의 소개로 인력사무실에 나가 정말 열심히
일을 했는데 인력사무실 사장은 노임을 소개하고 함께 일한 선배
에게 정산을 했다고 하고 선배는 그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고 딱
잘라 말하는 바람에 그 남자는 졸지에 갈 곳이 없게 되었다.

일도 하기 싫고 밥도 싫고 결국 술이 그 남자의 단짝이 되었다.
결국 혼자 된 누나가 관광버스를 닦으며 받은 돈으로 방값을 치르고
떠났다.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여지없이 그의 흐느적거리던 모습이
되살아났다. 그의 노래 소리도 빗소리에 섞여 거리를 떠돌았다.

만날 수 없다 해도 잊지 말아야 하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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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남자군요.
좀 행복한 일이 생기면 좋겠어요.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슬픔을 딛고 행복하게 살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비와 함께
짠~! 💙 한 나날들...

빗소리가 지닌 묘한 매력
그러나 슬픔은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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