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 철새는 날아가고

in zzanlast month

한때 마음에 혼곤하게 스미던 노래가 있었다.
그 시절 유행하던 카세트테이프로 듣던 노래는 나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인도했다.
그러면서도 실제 가사와는 거리가 있는 내 나름의 상상을 했다. 세속에 얽매여 사는 삶이 구차하게 느껴졌고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잉카제국의 화려했던 유적도 이제와서 아무것도 아닌데 그들에게 추앙받던 영웅이 죽어 내세에 콘도르로 환생해 창공을 날아다니는 상상을 하면서 무한대의 자유를 얻지 못하고 세상에 발붙이고 사는 내가 한 없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차츰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줄어들고 웃음이 사라졌다.

대화가 되는 몇몇 친구들과 어울리고 당시 유행하던 클럽을 만들면서 독서와 문학 얘기를 했고 문학의 밤이 열리는 곳으로 몰려다녔다.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책과 자기가 선정한 책을 읽으며 토론을 했고 한 달에 한 번 작품 발표를 하며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들었다. 그것도 길지 않았다. 입시가 다가오자 학교에서는 클럽활동을 중단하도록 했고 우리의 만남도 뜸해졌다.

한 번씩 소식을 주고 받기는 했으나 다들 시간을 내기는 어려웠다. 설을 지내고 한 번 만났으나 서로의 길은 다른 방향으로 나있었다. 그 중에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친구도 있었다. 집도 부유했고 일류학교에 속칭 ks마크를 달게 될 거라는 친구였다. 공부도 운동도 문학은 물론 음악이며 미술까지 빠지는 게 없고 영어도 원서를 읽을 정도로 모두가 부러워하던 친구였다. 그리고 내게 사이먼 앤 가펑클의 테이프를 선물한 친구였다. 채 겨울이 끝나기 전 그 친구는 코도르가 되어 높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얼굴에 나이테를 그리기 시작할 무렵 몇이서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El Condor Pasa 팬플룻 연주가 흘러나온다.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한 사람이 부지런히 가방의 지퍼를 연다. 겸연쩍어하며 진동모드를 놓지 않았다며 말꼬리를 흐린다. 자가도 좋아했지만 친정 아버지께서 유독 좋아하시던 음악이라고 한다.

늘 바쁘다는 그녀는 모임에도 드문드문 나타났다. 다른 모임과 같은 날 겹쳐서 난처할 때가 많은데 거기에서 맡은 역할이 있어 어쩔 수 없이 그 쪽으로 쏠린다며 얼굴을 보이는 횟수가 줄었고 빠진다는 전화도 없었다. 급기야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다른 사람을 통해 그녀의 근황을 듣게 되었다. 또 다른 모임에서 만나게 되었다며 실력도 있어 보이고 열심히 활동 할 것 같다고 좋아했다. 언젠가 보내준 철새도래지 사진이 지나간다.

원주로 길을 잡았다. 딱히 볼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행사도 없었다. 누군가의 길을 밟아가며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월정사 길에서 만났던 500년도 넘었다는 전나무가 보고싶어졌다.
내일이면 다시 못 만날 것 같은 충동에 바로 출발을 했다. 천천히 가다 휴게소를 들렀다. 잠시 화장실도 가고 커피도 한 잔 주문하고 차례를 기다렸다. 어디선가 간간이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누가 차 문을 열고 있나보다 하고 지나쳤다. 차례가 되어 커피를 받아들고 차로 돌아오는데 노랫소리가 발길에 감긴다. 애절하기도 하고 떠나간 영혼을 부르는 소리처럼 들렸다. El Condor Pasa였다. 나이가 들어보이는 남자가 팬플룻을 연주하고 젊은 남자가 이름 모르는 악기를 흔들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 세상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멀리 북천까지 날아갔던 콘도르가 영혼의 한 쪽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가랑비가 접어둔 날개를 적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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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자주 부르던 노래라 가사는 몰라도 음율을 다 기억이 나네요. ^^

이 곡은 워낙 유명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팬플룻이나 오카리나 연주도 많이 나와 있어 감상하기도 좋습니다.

가사는 몰라도 애절한 선율 때문에 좋아했어요. 예전 친구들도 하나 둘 그렇게 떠나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