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밥과 초심

생선을 참 좋아한다. 특히 날 것이나 구워서 먹는 것은 최고다. 오래만에 어제 점심에 초밥을 먹으러 갔다. 처음 가보는 곳이었으나 근처 소개로 가봤다. 먹는 것을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 나로서는 초밥도 어지간한면 잘 먹는다.

하지만 소개가 항상 믿을 것은 못된다. 원래 초밥의 질이 들쭉날쭉한건지, 아니면 식당이 초심을 잃은건지 모르겠지만 매우 실망스러웠다. 정말 맛있는 초밥과 그냥 맛있는 초밥을 구분하지는 못하더라도, 이 초밥이 먹을만한 초밥인가 아니면 성의없는 초밥인가 정도를 구분할 줄은 안다. 가격이라도 저렴하였다면 가성비가 괜찮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오는 폼도 최소한의 품을 들인 느낌. 만약 소개한 사람이 전성기 때의 식당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 식당은 초심을 잃었다.

물가가 초심을 잃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초심을 유지하지 못하게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초심을 잃었다면 사람들은 그걸 느낌으로 안다. 언어로 표현할 수 있든 없든, 사람들에게는 감이 있다. 감은 논리보다 빠르다. 그리고 상당히 정확할 때가 많다. 특히 안좋은 쪽이라면.

처음 가본 식당이었지만, 잠재적 단골을 잃었다. 물론 이제는 뜨내기만 받는 식당이 되었을 수도 있다. 냉정한 말이지만, 초심을 잃었다면 그게 어떤 상황이나 조건의 변화에서 기인했건, 그 변화에 다시 맞추어나가는 편이 좋지 않을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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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웸만해서 살아남기 힘든 업종이 음식업인데...
저런 집은 안타깝더라고요.

예. 맞습니다. 음식업 어려운 상황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1) 어려운 상황에 대해 이해와 양해를 구하는 것과 2) 어려운 상황이니 당연하게 상대측에게 이해해야한다고 강요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조금 나는 부분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