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이 일어날 때 3부

in #ko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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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 이어 계속)

식료품을 사는 전통적인 방법은 정육점, 빵집, 농산물 가게를 방문해 각각 주인이나 종업원에게 주문을 한 다음, 값을 치르고 고기, 빵, 농산물을 가져오는 식이었다. 국민의 4분의 1이 실직 상태였던 시대에, 이 모든 가게를 한 지붕 아래 두고, 소비자가 선반에서 직접 각 상품을 고른 다음 카운터에서 한 번에 계산을 하는 방식이 나타났고, 경제를 돌아가게 해주었다.

1930년대 또 하나의 발명이 빨래방이었다. "세탁기를 빌려드립니다." 문구로 홍보에 나섰고, 이후 소비자들의 세탁기 구매량이 감소했다.

모든 공장들에서 매출이 급감했고,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심했다. 답은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헨리 포드가 세상에 소개한 소위 조립 라인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1920년대, 공장의 시간당 생산성은 21% 향상됐다. 역사학자 프레드릭 루이스 앨런은 1930년~1940년 대공황 10년 동안,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거나 파트타임으로 돌리면서 "효율성과 경제성에 대한 강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 결과 41%라는 놀라운 생산성 향상이 일어났다."라고 말한다.

그는 1943년에 다시 다음과 같이 썼다.

지게차의 기본 원리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1935년 이후 사용되기 시작한 복잡한 전자 기계들, 즉 재질을 아주 정확하게 측정하는 기계 또는 장치의 성능을 관찰하고 자동으로 결함을 교정하는 기계 앞에서, 비전문가들은 경외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엔지니어들이 그런 기계를 사용하면서 쓰는 용어 역시, 기계가 작동되는 방식만큼이나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생소했다. 하지만 적어도 기계가 만들어낸 기적적인 결과물에는 감사할 줄 알았다.

1930년대부터 보편화되었던, 품질관리용 표본 추출 같은 간단한 기술로 제품 폐기율이 엄청나게 감소했다. 루이스 앨런은 이렇게 말한다.

노동자가 추측이 아니라 기계의 작동 방식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계의 움직임을 직접 조정할 수 있었다. 많은 공장에서 이 과정으로 불량품의 수를 줄임으로써 상당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고, 그 기계를 담당하는 노동자의 지위도 높아졌다.

이런 이야기는 산업계 전반에 걸쳐서 반복되었다. 1930년대의 생산성 향상은, 제조업이 거의 모든 이득을 차지했던 1920년대처럼 소수 분야에 국한되지 않았다. 1930년대는 유틸리티, 농업, 도매 무역, 소매, 운송, 광업, 통신 분야에서도 엄청난 기술적 진보가 있었다.

알렉스 필드는 "대공황의 트라우마도 미국이라는 발명 기계를 늦추지 못했다. 오히려 혁신의 속도는 더 빨라졌다."라고 말한다.

경제학자 데이비드 헨더슨은 이렇게 말한다.

발전에서 고압 보일러에서 나오는 증기로 저압 보일러를 가열하는 "토핑" 기법은 연료나 인건비 상승 없이도 발전량을 40~90% 증가시켰다.

새로운 설치 방법은 철도 침목의 수명을 "8년에서 20년으로 늘렸다."

새로운 페인트로 자동차에 도장한 후 마르는 시간은 3주(!)에서 몇 시간으로 줄어들었다.

전체 연구개발 인력은 1933년 10,913명에서 1940년 27,777명으로 늘어났다.

1930년대에는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이 훨씬 더 많아졌다. 달리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공황 동안 고등학교 졸업자 숫자가 1960년대까지 다시 볼 수 없는 수준으로 급증했다. 한 학생은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고등학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출석률을 높았다. 특히 학년이 높아질수록 더 그러했다. 일할만한 자리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형편이 되는 대졸자들은 희망 없는 구직활동을 계속하기보다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했다.

이 모든 것, 즉 더 개선된 공장, 새로운 아이디어, 교육 수준이 높아진 노동자들은 1941년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연합국의 군수물자 공급지가 되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했다.

중요한 문제는 1930년대의 기술적 도약이 대공황으로 인한 황폐화 없이 일어날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아니다, 대공황으로 황폐화된 사회가 그 밑거름이었다.

경제난이 너무 심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필사적으로 시도해야 했고, 이런 노력이 없었으면 뉴딜정책이 성공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기업의 파산율이 기록적으로 상승하는 위협이 없었다면, 기업 소유주와 기업가들이 그렇게 급하게 새로운 효율성을 찾았을지 의심스럽다.

경영진은 노동자들에게 한 "가서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라. 기존 매뉴얼은 다 버려라, 상관없다."라는 상황은 경제가 호황이고 전망이 밝을 때는 나올 수 없는 말이다.

크고, 빠른 변화는 필요에 의해 강제될 경우에만 일어난다.

2차 세계대전은 1939년 말을 타고 시작되어, 1945년 핵분열로 끝을 맺었다. 소련이 스푸트니크를 발사한지 불과 2주 후에 NASA가 조직되었고, 고작 11년 후에 미국 우주 비행사들이 달에 발을 디뎠다. 질 것 같다는 공포, 그에 따른 동기부여 없이는 그렇게 일이 빨리 진행되는 경우는 드물다.

(계속)

자료 출처: Collaborative Fund, "When The Magic Happ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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