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어느 철학과 대학원생의 수기 #009

in #kr-philosophy3 years ago

카페에 들어가서 2층 창가에 앉았다. 처음에 앉은 자리는 에어컨 바람이 바로 오는 곳이었다. 잠시 앉아있으니 으슬으슬해서 옆자리로 옮겼다. 창가의 블라인드는 반만 닫혀있어서 테이블의 절반에만 해가 들었다. 시골 사람인 나는 해가 싫지는 않은데 서울 시민들은 해가 몹시 거슬리는 것 같다. 모두 인상을 쓰고 손으로 해를 가리며 지하철역으로 서둘러 들어간다.

대부분 귀에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을 보며 분주하게 돌아다니는데 역 근처에 중년을 넘긴 남성 2명이 서 있다. 중절모를 쓴 사람은 긴 팔 자켓까지 입었는데 신발은 구두가 아니다. 다른 한 명은 반팔 셔츠를 입고 끈 없는 뭉툭한 구두를 신고 있다. 둘 모두 넥타이를 했고 손을 경건히 배꼽 즈음에 모으고 때때로 눈을 길게 감았다. 두 사람 앞에는 바퀴가 달린 가판대 같은 것이 있고 거기에는 소책자가 꼽혀있는데 아마도 제칠일안식일교에 관한 책자인 것 같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두 명의 남성이 교대를 했다. 둘 모두 넥타이를 했고 끈 없는 구두를 신었고 긴 소매 상의를 입었다. 한 명은 자켓도 갖췄다. 아무 말 없이 가판대 근처에 서있기만 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정성을 들이는 중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또 심신이 피로한 누군가가 책자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다면 그때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 그 사람에게 포교하는데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들 뒤로는 요란한 광고를 단 시내버스가 자주 지나갔다. 상업광고가 끊임없이 흘러가는 장면을 배경으로 나름 성스러운 일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들 옆에는 허리굽은 할어미나가 노점을 차리기 위해 분주하다. 어떤 할아버지가 상추가 담긴 아주 큰 봉지 3개를 땅에 놓았고 할머니는 그 할아버지에게 만 원짜리 몇 장을 쥐여줬다. 그리고 그 상추 봉지를 다시 조금 옮기고 사라졌다. 잠시 뒤에 다시 나타나서 500ML 커피우유를 마셨다. 그리고 가방에서 작은 봉지를 꺼내 무언가 먹었고 상추를 다듬기 시작했다.

나는 한가로운데 다들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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