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문묘의 하마비(下馬碑)

in #kr-writing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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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해야 하는 곳 앞에는 하마비가 있었다. 단순히 말에서 내리라는 뜻인 하마라고 쓰여있는 것도 있고 누구든 말에서 내리라는 뜻인 대소인원개하마라고 적힌 것도 있다. 버르장머리 없이 말 타고 가지 말고 내려서 예를 다하라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왕의 묘나 종묘 혹은 향교 앞에서 볼 수 있다.

공자를 모신 하노이 문묘 앞에도 하마비가 있다. 그런데 독특하게 하마비에 누각을 만들고 향을 피워놓았다. 문묘가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것이지 하마 자체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법원에 가면 경비도 목에 힘을 줬다는 이야기처럼, 문묘가 근엄한 곳을 알리는 하마비에도 문묘의 근엄함이 묻어있을 것이다. 그래도 문묘 앞에 있는 4개의 비석에는 재향하지 않는 것을 보면 하마비에 향을 올리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어쨌든, 내가 하마비를 보고 딱 생각난 것은 하마비가 오늘날로 따지면 차량 금지를 나타내는 교통 표지판 역할도 한다는 점이다. 물론 예를 다하기 위해 차에서 내려 걸어가라고 요구하는 상설 표지판은 없지만 지금도 높은 사람들을 위한 차량 통제는 의전처럼 행해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교통 표지판을 놓고 재향하는 일은 이상하다. 그런데 나를 포함한 내 주위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오늘날 고귀한(?) 혹은 고풍스러운 문화나 위대한 인류의 유산이라고 호들갑 떨며 대하는 많은 것들이 사실 예전에는 교통 표지판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지간한 사람은 평생 벌어도 사지 못할 그 그림은 정말로 그만한 대우를 받을 가치가 있는 것인지, 위대하게 여겨지는 그 학자의 말은 정말로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경전처럼 받들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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