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essay @jjy의 샘이 깊은 물 - 땅콩의 변신

in #kr4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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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의 변신@jjy

과히 높지 않은 산들이 울타리처럼 빼곡히 둘러앉은 지형이 위에서 보면 흡사 삼태를 닮았다고 하는 산골 마을, 큰 부자가 나올 리도 없겠지만 돈을 한 삼태만 벌면 떠나야 하는 곳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었다. 농토라고 해 봐야 그다지 넓지도 않았고 그것도 없는 사람들은 산 비알을 일구어 채소나 고구마 같은 작물을 기르기도 했다. 따라서 평야지대와는 재배되는 농작물의 종류나 규모 또한 단순했다. 그 밖의 채소도 집에서 먹을 정도만 심었다.

오래 전이기도 했지만 수도권이라고는 해도 근교 농업이나 목축을 하는 집도 없이 근근이 사는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여러 자식을 기르며 교육을 시켰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다행스런 일은 그 시절엔 오히려 아쉬운 게 없었다는 특히 우리 집이 결코 부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성장 할 수 있게 해 주신 부모님들의 깊은 사랑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설을 쇠고 며칠이 지나나지 않아 아버지께서는 아버지의 외가댁 즉 할머니의 친정이나 큰 고모님께 세배도 드리고 층층시하에서 살얼음판 같은 시집살이를 하고 있는 막내 동생을 찾아보러 떠나셨다. 아버지께서 집을 비우시는 일은 거의 없어서 하룻밤을 지내고 우리 남매는 동네를 드나드는 큰 길이 보이는 뒷동산으로 올라가서 놀며 아버지를 기다렸다. 북서풍이 매서운 해질녘에 잿빛 두루마기에 중절모를 쓰시고 좁다란 마을 안길로 접어드시는 아버지가 보이는 순간 큰 소리로 부르며 달려갔다.

저녁상을 물리고 큰고모님 댁 소식과 딸 같은 막내 동생 소식을 전하시며 몇 차례씩 말씀이 끊기는 이유도 그 때는 알 길이 없었고 오로지 아버지의 손에 들려있던 꾸러미에 대한 궁금증이 그 꾸러미 보다 더 커지고 있었다. 몇 개비의 담배를 피우시고도 말씀이 없으신 아버지의 무거운 표정에 귓속말로 엄마를 졸랐다. 그제야 아버지께서는 잠시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으시고 따뜻한 얼굴로 돌아오셨다. 고모님들이 우리들에게 학교 잘 다니고 밥 잘 먹으라고 하셨다고 전하시며 꾸러미를 내놓으셨다. 동여맨 노끈을 풀고 몇 번을 싸고 싼 종이를 풀어보니 그 속에는 연한 자줏빛 땅콩이 가득 들어있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에 넣고 오물거리다 동시에 밖으로 나갈 사이도 없이 방문을 열고 퉤퉤 하는 소리와 함께 뱉어버렸다.

우리가 알던 땅콩의 고소한 맛은 간 데 없고 비릿한 맛이 입안에 가득했다. 볶지 않은 날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채 무턱대고 입에 넣었으니 비린내가 고약했다. 다음 날 우리는 고소하게 볶은 땅콩을 먹었고 그 해 봄 우리 동네에서 처음으로 땅콩을 심었다. 그리고 딸네 집에서 가지고 온 종자는 밑지지 말고 잘 길러야 딸이 잘 살게 된다고 하시며 정성을 쏟으셨다.

한 때 땅콩회항 사건이 갑질의 선두주자처럼 뉴스를 장식했다. 시끄럽다 못해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그 항공사 사주의 딸은 속칭 갑질의 대명사로 회자되고 잊을 만하면 갑질 사건이 얼굴을 바꾸어 가며 보도 되었다. 타인의 노력과 시간에 대한 경멸을 넘어 인격참살이라고 해야 마땅할, 꿇리는 사람과 꿇는 사람의 명백한 대조와 구분에서 언제쯤이면 자유로울 수 있을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땅콩의 맛은 같다고 해도 주어지는 사람에 따라 그 맛은 천차만별이라고 해야 하겠다.


대문을 그려 주신 @cheongpyeongyull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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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었네요..
땅콩사건..
옛날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땅콩사건으로 갑질이라는 말이 사라졌으면 좋았는데
땅콩을 볼 때마다 떠오릅니다.
평안한 밤 지내세요.

부모님의 사랑이 깊이 느껴집니다.
읽는 내내 머리속에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참으로 대조되지만 땅콩회항 사건처럼 사람의 인격을 박살하는 사건이 아주 가까운데에서도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사회에서 이러한 현상이 사라지기는 어려우나 이런일이 발생했을때 계란과 바위의 싸움이 될 지언정 2차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오늘날의 무의미한 인내가 미래 다른이에게 또다시 발생될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말아야겠어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보팅하고 글 퍼갑니다!

한 사람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한 사람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의 동행을 구하고
마침내 하나 된 의지가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감사합니다.
빗속에서도 맑은 마음이기를 바랍니다.

아침 출근길에 잠깐 들은 이야기

아버지와 딸과의 관계에서 아버지의 사랑이 딸이 성장해서 사회 활동을 하고 세상을 살아 가는데 많은 영향을 끼치고 훌륭한 여성들이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jjy님도 아버지의 역활을 많이 받으신분 같습니다.
아래 문구를 봐도...

딸네 집에서 가지고 온 종자는 밑지지 말고 잘 길러야 딸이 잘 살게 된다고 하시며 정성을 쏟으셨다.

제가 아버지와 엄마를 섞어 닮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품은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는 말을 들어요.
어느 분을 닮았어도 저는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반이라도 닮고 싶었으니까요.
좋은 하루 되세요.

땅콩사건은 다시는 없었으면 합니다. 땅콩 하나도 소소한 추억이 될 수있다는것에 세삼 삶이 참 소중하다는것을 느껴봅니다 비오는 날이네요 오늘도 힘내서 좋은하루 보내세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아직도 도처에서 들려옵니다.
먼산에서 골안개를 피워올립니다.
필요이상의 물기를 다시 하늘로 보내는 산에서
또 가르침을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편안한 오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