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 그 자체

in #kr2 months ago

아이들이 잠들고 오늘 하루도 아이들과 별탈 없이 (화내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는 뿌듯함과 안도를 느끼며 여유있게 유튜브를 보았다.

김창옥 강사님의 제주도 옹기 만드는 영상부터 시작해 전신 화상을 입었으나 현재 사회복지학과 교수님이 된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 이지선님의 영상도 보았다.

그리고 본 것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헨리’편이다. 평소에도 헨리가 누구나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귀여운 호감형(성격과 외모 모두)이라고 생각해왔으나 헨리가 캐나다의 명문 토론토 대학을 중퇴하고 버클리 음대를 다녔다는 것은 오늘 영상을 통해 알았다.

캐나다에서 태어났다는 헨리의 캐나다 삼층 전원주택이 나오고 홍콩과 대만 출신의 이민자 부모님과 형과 여동생이 나왔다. 그야말로 완벽한 가정.

가족들은 모두 악기를 다룰 줄 알았고, 여유로운 미소에 유머 감각까지 갖추고, 여동생은 화장기 없고 화려하지 않은 수수한 느낌이었으나 미인이었고 게다가 거만해 보이지도 않았다. 미스 토론토 출신에 명문인 토론토 대학을 다닌단다.

부모님은 헨리가 17살에 SM오디션을 보기 위해 한국행을 결정했을 때 우려했던 상황을 이야기하며 아들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사랑이 느껴졌고,

헨리가 한국에서 어느날 갑자기 서프라이즈로 캐나다집을 방문했을 때 갑자기 들이닥쳤으나 그 와중에도 그 집은 모든 것이 완벽하더라. 심지어 자고 있던 여동생의 쌩얼까지도.

내가 좋아하는 JTBC 비정상회담의 중국인 패널 장위안이 헨리의 여동생에게 관심을 보이며 선물을 건네는 장면도 나왔는데, 그마저도 훈훈하고 유쾌한 분위기였다.

아까 전신화상을 입었으나 현재 교수님이 된 이지선님의 영상을 봤을 때랑 무언가 다른 나의 내면의 꿈틀거림.

이지선님의 영상을 볼 때 맥주를 마셨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편하게 맥주를 마시며 이지선님을 본다는 자체가 죄책감 아닌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조금 안도하는 마음이 슬며시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나는 저렇지 않다는. 나는 최소한 멀쩡하고 평범하다는 안도. 불행한 사람을 보면서 남몰래 미소 짓는 것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그 뒤에 헨리의 완벽한 가정을 보고 나니, 또 다른 나의 내면의 꿈틀거림.

너무나 완벽하게 사랑받고 자랐고, 적당히 엄격한 교육을 받았으며, 틀에 박히지 않은 예술적 기질과 미모와 재능을 모두 갖춘 그러한 비현실적인 완벽한 가정.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유쾌하고 웃음이 나와서 다시 앞으로 돌려보고 미소 지으며 시청했는데, 나의 미소에는 씁쓸함도 들어있었던 것 같다. 부럽다 라고 말하지도 못할 정도의 동경.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저런 가정이 실제 존재하나. 저렇게 부유하고 화목하며 미모와 재능을 모두 갖춘 서로 사랑하는 가족이 존재하다니.

평소 티비에서 보던 호감형일 수 밖에 없는 헨리의 성격과 외모는 그럴 수 밖에 없는 건가. 그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가족이 다 그렇다니.

재능을 갖추면 외모가 좀 빠지던지, 모두 갖췄으면 애정결핍이라도 있던지, 아니면 거만하기라도 해야 한다. 뭔가 트집잡을 게 있어야 하는데 트집 잡을 게 없었다.

세상에 완벽은 없다고 하는데 어쨌든 그 화면 안에서는 모든 게 자연스럽고 완벽했다.

저런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 인생 경험이 많지 않은 평범한 젊은이들은 '나만 이런가? 우리 집만 이런가?’ 라는 생각에 심란해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나는 이미 세상엔 나와 같이 별로인 가정이 너무나 많이 존재하고,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게 완벽하진 않지만 최소 화목하기만 한 가정도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요즘 다들 유튜브를 보고 또 스스로가 유튜브의 주인공이 되면서 우리가 행복의 평준화에 이르게 된 것 같다. 누구든 비슷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자유.

하지만 유튜브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다들 나보다 밝거나, 재능이 있거나, 통찰력이 있거나, 인품이 좋아보인다. 그리고 그런 영상들이 미친듯이 많다.

유튜브를 보면서 위안을 받고 몰랐던 것을 배우고 접해보지 못했던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하고 세상이 이렇게 좋아졌나 감탄하고 감사하게 느끼는 동시에 뭔가 큰 격차를 느낀다.

여전히 나만 이런 것 같은 느낌. 나만 너무 평범하고, 나만 너무 별로인 것 같은 느낌.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그닥 유쾌하지 않은 찝찝한 느낌.

헨리의 비현실적인 사랑이 가득 넘치는 완벽한 영상이 끝난 후, 나는 다시 맥주를 들이킨다.

그리고 아까 이지선님을 생각해본다. 그때 그녀를 보며 느꼈던 나의 감정과 지금의 내 감정을 비교해본다. 그녀를 보고 나는 위안 받았고, 그를 보고 나는 또 찝찝해졌다. 그리고 그녀를 보고 위안 받은 내 자신의 감정을 다시 돌이켜보니 그 감정도 찝찝하다.

난 사회학자도 뭣도 아니지만, 앞으로 더 대두될 사회문제는 격차가 아닐까. 보이는 모습과 실제의 모습과의 격차. 수많은 남들과 나와의 격차. 끊임없이 격차를 느끼게 만들어주는 편리해진 여러 매체들.

맥주를 다시 한번 들이키고, 이지선님에 대한 생각도, 헨리에 대한 생각도 우선은 저 멀리 내 뇌 속 어딘가에 잠시 놓아둔다.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못했기에.

그리고선 유튜브를 정신 없이 볼 때 잠시 그 존재를 잊고 있었던 잠든 나의 아이들을 보러 간다. 자다 깨 칭얼대는 완벽한 내 아들을 안아주고 분명 베개를 베고 있었는데 어느새 저 멀리 다른 곳에 가있는 완벽한 내 딸을 바라본다.

정돈되지 않은 심하게 너저분한 완벽한 내 집 상태를 본다. 맥주와 바나나와 순대와 떡볶이를 야식으로 다 (처)먹은 완벽한 내 둥그런 배를 본다. 완벽한 나의 허벅지 튼살 위에 따끈한 노트북으로 이 글을 쓰며 완벽하게 (사실은)평범했던 내 과거를 다시 빠른 감기로 돌려본다.

소주병이 깨지고, 네개였던 식탁 의자는 날이 갈수록 하나씩 (부러져)사라지고, 무서운 아빠를 술기운으로 대응해보려 아빠의 바짓자락을 붙잡으며 나 죽여라 했던 엄마.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자매. 다음날 시퍼런 눈을 화장으로 가리며 여느날처럼 미용실에 출근했던 엄마.

인생의 절반은 외롭거나 무서웠던 나.
모든 게 완벽하게 인간적인 평범했던 과거.

완벽하게 평범한 남편. 아빠처럼 폭력도 쓰지 않고 성실하게 가장 역할을 하지만 성질머리가 있는 너무나 인간적인 나의 남편. 장위안처럼 잘생기지 않았지만 같은 중국인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장위안보다 키가 크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완벽하게 인간적인 나의 남편.

세돌이 안된 동생만 챙겨준다며 마트와 놀이터 모래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다른 사람들이 애가 기절한 줄 알고 다가오게 만들었던 나의 완벽한 첫째. 완벽하게 아이다운 나의 완벽한 딸.

비 오는데 유모차 안으로 절대 들어오지 않고 빗길에 세워진 자전거 페달을 하염없이 돌리더니 갑자기 비 맞은게 억울했는지 빨리 집에 가자며 소리치는 완벽한 둘째. 완벽하게 아이다운 나의 완벽한 아들.

내가 기억이 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계속되어온 나의 완벽한 손발 다한증.

양말을 신은 발은 늘 꿉꿉하고 시간이 있어도 빨 시간은 내지 못하는 나의 가여운 운동화에선 늘 완벽한 남자의 냄새가 나고,

헨리와 이지선님의 영상을 추억하며 분노인지 회한인지 모를 감정을 타자로 푸는 내 자판은 온통 완벽한 다한증의 흔적.

자고 있는 아이들의 완벽한 숨소리.

바깥의 완벽한 시끄러운 차 소리.

이 모든 것이 완벽하다.

완벽하게 인간적이다.

우리는 그래서 서로를 안고 살아간다.

우리는 영원히 부족하기에,

영원히 완벽하게 인간적이기에,

그래서 나는 너가, 너는 내가 필요하다.

우리는 사랑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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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오시는 분들이 계셔서 제 예전 글들을 셀프 보팅 없이 올려봅니다~~^^

제 글을 오랜만에 보시는 이웃분들이 못 보셨을 글을 보실 수 있도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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