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일기

in #kr3 years ago (edited)

하루를 기록하기로 했기 때문에 쓰는 일기.

네이버에 쓸까 하다가 우선은 이곳에 남기기로 했다. 어쨌든 한번은 더 신중히 생각하고 올릴테니까.

다시 요리판으로 뛰어들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오래 지속할 수 없으리란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기에 결국 글을 써야한다는 결론으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음악에 대한 미련을 아주 버린 것은 아니다.

갑자기 웬 음악?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뉴욕에서 치열하게 요리를 하며 살 적에도 가슴 한 켠엔 늘 그런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어차피 음악을 하고 살 것이라는.

그때 출퇴근하던 곳은 B라는 레스토랑인데, 어제 만난 셰프 H는 최근 B가 위태위태하다면서 그가 사기꾼이라고 했다. B는 동시에 나를 많이 이뻐해준 할아버지 셰프의 이름이다.

최근 B와 찍은 사진들을 발견하는 바람에 그가 보고싶던 차였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새로 나온 2019 미슐랭 스타 뉴욕 편에 B가 짠하고 올라와 있는 게 아닌가. 얼마나 기쁘고 다행이던지.

미슐랭 리스트가 오늘 발표된 것은 아끼는 지인 S의 인스타를 보고 알았다. 뉴욕에서 한식의 위상을 알리고 있는 셰프인데 이번에 미슐랭 별을 따지 못해 속상한 모양이었다. 우습게도, 요리사들 사이에선 평판이 현저히 낮았던 다른 한식당과 최근에 막 인기를 끈 또 다른 한식당이 별을 받았다.

사실 웬만큼 실력을 가진 레스토랑이 미슐랭 별을 받으려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요리사의 신념이나 고객의 요구보다 미슐랭의 기준에 부합하는 서비스를 하면 되는 거니까.

라고 얘기한 지인 J는 작년에 한국에서 미슐랭 스타를 받았다. 이 셰프도 본인의 색깔이 꽤 강한 편인데 H는 그의 요리가 손님을 무시한다고 혹평했다. H의 레스토랑은 몇년 전 미슐랭 별을 잃었지만 그 자신은 한국에선 스타셰프가 되어 있었다.

H의 친구라고 해서 가수 U를 소개받았다. 그는 요리에 관심이 많았고 레스토랑도 3개나 갖고 있었다. B의 추천으로 일본의 K라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할 뻔한 적이 있는데, U가 K의 셰프를 데리고 식당을 차린 것이다. K는 미슐랭 별 세개를 받은 일식집이다.

그런 그에게 나는 음악이 하고 싶었다고 얘기했다. 함께 있던 요리사들은 박장대소했다. 나중에 말하길 U는 음악이 정말 간절했다고 했다. 음악이 아니면 난 끝이라는 생각으로 이 악물고 여기까지 왔다고. 문득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음악이 하고 싶었나? 정말 글을 쓰고 싶었나? 정말 요리를 하고 싶었나?

소주에 소맥에 고급져 보이는 위스키까지 얻어 먹고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와서는 내내 악몽을 꾸었다. 정신없이 쫓기는 꿈이었는데, 정말로 쫓기고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발각되면 죽을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함께 가자 회유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눈치였다. 비겁하지만 나 혼자서라도 도망쳤고, 가슴을 졸이며 숨어 있다 또 도망치기를 반복했다.

잠에서 깨 생각했다. 더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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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길모퉁이에 서있는 '나침반' 노래의 주인공 같네요. 해서 좋은 일이 많아도 골치 아픕니다^^ 누군가는 정말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고 하고, 누군가는 정말 가슴이 뛰는 일은 취미로 하라고 하죠ㅋ 정답이 없는 것 같아요. ㅎ

저는 CB mass의 나침반이 떠올랐어요.
아직도 기억나는 구절 '삶이 살만 한 가치가 있길 바래!'

캬아 그 노래를 알다니! 고등학교때 열심히 들었는데 ㅎㅎㅎ

오, 그 노래는 모르지만 고등학교때까지 늘 나침반을 선물로 받고 싶었어요! 어디로 가야할 지 누가 좀 알려줬으면 싶어서요. 지금은 간절함이 제일 필요해요. 음.. 간절함이 간절하니 된 건가요 ㅎㅎㅎ

글에서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설마 설운도의 나침반인가요. 제목만 모르지 아는 노래였군요! ㅎㅎㅎ

종로로 갈까요. 영동으로 갈까요. 차라리~ 청량리로 떠날까요.

설운도 노래 맞아요ㅎㅎ 과연 스프링님은 어디로 가게 될까요^^

ㅋㅋㅋㅋ

돈, 명예, 시간, 사람, 애정, 건강 중 무엇을 얻을 때 내가 가장 행복할지 생각해봐야하는 것 같아요.

써니님께서 말씀하신 저 여섯가지 중에 절반은 이제껏 과소평가해왔는데, 알고보면 그 세가지야말로 사라지면 제일 괴로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복에겨워 아직 그 소중함을 모를 뿐...

이니셜로 되어 있어서 조금 헷갈리긴 하지만....ㅎㅎ
참 많이 생각하게 만드는 일기네요..

역시 글을 쓰시는 분들은 일기도 이렇게 독자가 생각하게 만드는 건가요 ㅎㅎ

저는 하고 싶은게 많은 사람인데 그 중에 진짜로 하고 싶었던건 있긴 했을까 생각하게 되네요.
잘 읽고 갑니다!! :)

처음엔 이름을 다 적었는데 아차 싶어서 필터를 거쳤더니 불친절한 글이 되고 말았네요. 저도 늘 하고 싶은 게 많아 왔는데, 어쩌면 그건 정말 하고 싶은게 없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종종 든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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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아니면 죽겠다는 마음까진 들지 않아 택하지 않았던 것들 중에, ‘그래도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이란 형태로 굳어져서 사는 동안 계속 걸리는 것들이 있는데, 그럼 그제야 그것들이 생각보다 내게 가볍진 않았구나 싶기도 하네요ㅎ

그게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 제 경우엔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해봐야할 것들을 적어놓은 수첩이 있었는데, 대부분 줄이 그어진 것 같아요. 다만 정말 '한 번' 만 한 것들도 많더라구요. 이제는 더 끈기있게, 간절한 마음으로 하고 싶어요.

곰돌이가 @tanky님의 소중한 댓글에 시세변동을 감안하여 $0.002을 보팅해서 $0.021을 지켜드리고 가요. 곰돌이가 지금까지 총 1362번 $19.118을 보팅해서 $16.898을 구했습니다. @gomdory 곰도뤼~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곰도리~~~

공감이 많이되는 생각이 많이드는 글입니다.

오랜만이예요 :) 잘 지내셨죠?

(╹◡╹) 네. 와타시와 겡키데스~ ㅎ 잘 지내고 있어여~

도망칠까봐 반신욕으로 잡아둠...

꺄아아 >ㅁ< 이렇게 귀엽기 있귀없귀!! ㅋㅋㅋㅋ 반신욕도 시켜주고 행복하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가 생각납니다. 숲에는 두 갈래의 아름다운 길이 있었지만 몸이 하나인 관계로 한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고, 먼 훗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과 회한을 표현한 시.
가을 단풍이 곱게 든 길을 걷노라면 어김없이 이 시를 떠올리지요. 인생 정답 없습니다. 먼 훗날 후회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수 밖에요~~

예전엔 후회같은 거 안한다고 했는데 그게 정신승리였더라구요 ㅎㅎㅎ 말씀대로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무엇에 그 최선을 걸 지를 정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고 있지만요 :)

H는 원래 그렇게 까칠한가요...?

까칠한 것보다는 허세가 느껴진달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이고 싶어하는 느낌적인 느낌?

잠깐 돌아가더라도 지금 하고픈걸하며 오늘 행복을 느껴가면 안되는걸까요?

마치 내일 무슨일이 있더라도 오늘을 사는 아이들처럼요..

안되기는요~~~ 저는 여태 그리 살았는걸요 :) 넘 많이 돌아와서 이젠 내일도 행복한 삶을 살아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