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한여름밤의 꿈' 후기

in #kr4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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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워 덩케르크를 달리고 나 집에 가니 아침 일곱시.
그리고 오후 세 시 공연을 보기 위해 한 시에 일어났습니다.
'한여름밤의 꿈'
셰익스피어 원작. 유명한 작품이죠.

제가 농담삼아 자주 언급하는 고전의 정의.
'아는 사람은 많은데, 본 사람은 없는 작품.'

유명하지만 막상 보는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희곡으로 읽어본 적이야 있었지만...
막상 또 고전작품 공연 자체가 자주 있는편도 아니고.

간신히 정신을 차려 집밖으로 나왔는데
중복 다음날인데다가 살짝 온 비가 겹쳐서
집에서 15분 거리 걸어가는데도 한증막 파티.
한 걸음 걷는것도 쉽지 않아
삼보 일배하는 성지순례자의 마음으로
연극을 위한 고독한 구도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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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간, 서강대학교 메리홀 도착.
원래 4인팟이었는데
오전의 폭우로 한 분이 떠나고
새벽까지 달린 덩케르크 후유증으로 두 분이 떠나고
저 혼자 공연을 보게 되었습니다.

데스크 : 예약하셨어요?
UCBA : 네... 고선생님 이름으로 네 장 예매되어있는데요...
데스크 : 는데요?
UCBA : 저만와서... 한장만 주세요...
데스크 : 아 네..

왜 그걸 굳이 말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간 건물안이 시원해서 살았습니다.
더위를 탈출하자 마음이 좀 놓여옵니다.
이제, 공연을 보기 위해 안으로 들어갑니다.

공연장 안에는 커다랗고 경사진 대가 놓여있습니다.
별다른 무대장치는 보이지 않는군요.
하나 둘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기 시작하면서
공연시간이 다가옵니다.

이번엔 스포일러고 뭐고...
줄거리는 그냥 쓸게요.
어차피 고전인데, 이 참에 알아두시면 넘나 유익한 것!

  • 줄거리

서로 사랑하는 두 남녀, 라이샌더와 허미아.
그러나 허미아에게는 아버지가 마음에 정해둔 정인
디미트리어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디미트리어스를 사랑하는 헬레나도 있지요.
디미트리어스는 한 때 헬레나를 사랑했지만,
이젠 헬레나의 절친한 친구인 허미아에게 완전히 반해 있습니다.
(막장드라마의 향기가 솔솔)

아테네의 법은 딸이 아버지의 뜻대로 결혼하지 않으면
사형이라는 무시무시한 조항이 있는데,
이에 불복한 두 남녀는 아테네의 공작
테세우스와 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타의 결혼식을 앞두고,
아테네를 떠나기로 마음먹습니다.

야반도주를 감행한 허미아와 라이샌더.
그리고 자신을 개 닭 보듯 취급하는 디미트리어스의 마음을 끌기 위해
일부러 허미아의 도주사실을 알리는 헬레나.
이 대책없는 네 남녀는 한밤의 숲에서 길을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숲.
이 곳엔 요정왕 오베론과 여왕 티타니아의 대립이 한창입니다.
오베론이 데려온 인도의 미소년을 티타니아가 자기 마음대로
데려가 버린 일로 한창 다투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에 앙심을 품은 오베론은 요정 퍽을 시켜
사랑의 묘약으로 장난을 칠 계획을 세웁니다.
눈에 뿌리면 처음 본 상대를 사랑하게 만드는 묘약.
이걸 티타니아의 눈에 뿌려
얼토당토않은 상대를 사랑하게 만들겠다는 건데요,
그 참에 숲에서 싸우는 헬레나와 디미트리어스를 본 오베론은
퍽에게 '숲에서 한 쌍의 남녀를 발견하거든, 남자의 눈에도 약을 넣어두라'며
헬레나의 가엾은 사랑을 응원하려고 합니다.

퍽은 오베론의 명에 따라
축제를 즐기고 잠든 티타니아의 눈에 약을 발라놓고,
또 다른 명을 받들기 위해 한 쌍의 남녀를 찾아다닙니다.
하지만 퍽은 헬레나와 디미트리어스 대신
잠든 라이샌더와 허미아를 발견해버리고,
라이샌더의 눈에 묘약을 바릅니다.
그리고 우연히 이들을 발견한 헬레나가 라이샌더를 깨우고,
라이샌더는 헬레나에게 반해 허미아를 버려둔 채
헬레나를 쫓아다니기 시작합니다.
헬레나는 디미트리어스의 마음을 얻지 못한 자신을 놀리는 것이라 여겨
크게 상심하고 화내며 라이샌더를 뿌리치고 도망갑니다.

다시 숲의 어딘가.
한 어리숙한 마을 사람들이
공작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한 연극을 준비중입니다.
말도 안되는 엉터리 같은 연극준비를 본 퍽은
이들을 놀려주기 위해 얼간이 광대 보텀의 머리에
당나귀 가면을 씌우고 소동을 일으킵니다.
보텀은 숲을 헤매다 티타니아의 눈에 띄고,
티타니아의 열렬한 구애를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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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된 오베론은 퍽을 꾸짖으며
이들의 관계를 다시 바꿔놓고자 노력하고,
디미트리어스의 눈에 약을 발라 헬레네를 사랑하게 만들지만,
이젠 반대로 허미아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불청객 신세로 전락합니다.

라이샌더와 디미트리어스는 누가 헬레네를 차지할 것인지 다투며
1:1로 결투를 해 승부를 가리자며 숲으로 사라지고,
오베론은 퍽에게 이 상황을 수습하도록 명령하고 티타니아에게 갑니다.
원하는 소년을 돌려받은 후 헬레네에게 걸린 마법을 풀어주고
퍽은 두 남자를 이리저리 유인한 후 라이샌더의 눈에 걸린 마법을 풀어줍니다.

이 짧지만 강렬했던 밤이 지나고,
네 남녀는 두 쌍의 커플이 되어 마을로 돌아옵니다.
디미트리어스의 마음이 돌아선 것을 안 허미아의 아버지도 승복하고,
마을 사람들이 준비한 우스꽝스러운 연극을 상연하며
모두가 즐겁게 웃으며 극은 막을 내립니다.

  • 감상평

솔직히 첫장면에서
테세우스 맡은 분의 팔이 너무 진자운동을해서
엄청 신경쓰였습니다(......)

무대장치는 아까 말한 것처럼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경사진 단 하나가 전부인데,
갑자기 요정들이 나와서 단을 돌리자
단이 90도 회전하며 옆으로 늘어선 경사면으로 변했습니다.
갑자기 국내최초 4D연극 바보 햄릿의 악몽이 막 살아나는 기분이...

하지만 극 자체의 갈등구조가 명확하고
이야기의 흐름이 흥미진진하기 때문에
전개가 진행될 수록 빠져들어서 봤습니다.
특히나 희극답게 중간중간의 웃음포인트들을 잘 살려줬는데요,

네 남녀간의 관계가 순식간에 뒤집히듯 바뀔 때의
오락가락하는 태도변화가 주는 웃음도 있었고,
어리숙한 마을 사람들이 공연을 준비하며 일어나는 해프닝도 인상깊습니다.
극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극중극이 상연될 때는
나도 모르게 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습니다.

소소한 제스처, 표정 하나하나가
우스꽝스러운 과장을 통해 폭소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대단히 흥미로웠습니다.
또 다시 얼척없는 개그본능이 스멀스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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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도! 나도 웃기고 싶다!!>

2시간 가량의 플레이타임이 길지 않을까 했는데
좌석도 편안하니 좋았고, 딱 정가운데기도 했고...
점점 몰입해가면서 보다보니 즐겁게 볼 수 있었습니다.

  • 요약

장점
유쾌하다
이해하기 쉽다

단점
무대장치에서 의도가 안 보인다
요정이 무섭다
퍽이 안 날렵해 보인다
테세우스 팔이 진자운동을 한다

장점보다 단점을 더 많이 적었지만,
충분히 즐거운 작품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고전이 왜 고전인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 잡설

사실 팜플렛 뒷면에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멘트가 있어서
엄청 리뉴얼하고 마개조된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거의 원작과 동일했습니다.
현대적이 된 건 복장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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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 post looks interesting
i wish there was an english translation
anyway thanks for sharing and keep up the hard work

'아는 사람은 많은데, 본 사람은 없는 작품.'

고전의 정의를 이렇게 명료하게 하신 분은 처음 봅니다... 저는 사실 지금도 올려주신 줄거리를 읽지 않았습니다. ㅡ.ㅡ 책을 읽으면 죽는 병에 걸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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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은 읽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읽으면서도 헷갈려했거든요. ㅎㅎ 연극은 본적 없는데 재미있으셨나봐요. :)

소극장 연극보는게 제 버킷리스트인데 기회가 되면 보고싶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