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72

in #sct2 months ago

이정이 대답했다.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한 것은 양자가 같습니다. 한쪽은 이를 역이용하고, 다른 한쪽은 이를 그대로 사용했을 뿐입니다. 태공이 무왕과 함께 은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목야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폭풍우를 만나 깃발이 찢겨지고 북이 파손되었습니다. 이에 산의생은 일단 진격을 중지시키고 점을 쳐보아 길하다는 점괘가 나온 다음에 진군을 계속하자고 했습니다. 이는 당시 장병들이 전투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점괘를 빌어 군사들의 불안해 아는 마음을 안정시키고자 해 임기응변으로 말했던 것입니다.

20200823_072751_resized.jpg

그러나 태공은 ‘썩은 풀이나 마른 뼈 따위에 무엇을 물어 길흉을 판단한단 말인가? 또 제후국인 주나라가 천자국인 은나라를 정벌하는 것은 신하가 임금을 치는 것으로서 부득이해서 하는 일이다. 만일 점괘가 불길하다고 해 이번의 거사를 중단하고 다시 후일을 기다릴 수 있겠는가?’하고 그대로 진격을 감행했던 것이니, 이 역시 임기응변의 한 가지 방편이었습니다.

이는 자세히 살펴보면, 처음에 산의생이 임기응변술을 구사했고, 나중에 태공이 그것으로 결말을 지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산의생이 점괘를 인정한 것과 태공이 점괘를 부정한 것은 서로 다르나, 임기응변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신이 앞에서 음양설에 의한 술수를 폐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은 음양설이 임기응변의 한 가지 재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음양설을 활용해 성공을 거두는 것은 오직 장수의 임기응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참고문헌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武經七書』, 서울: 서라벌인쇄, 1987
이정(저), 『이위공문대』, 강무학(역), 서울: 집문당, 2018
성백효, 이난수(역), 『尉繚子直解李衛公問對直解』, 서울: 전통문화연구회, 2014
성백효(역), 『사마법,울료자,이위공문대』, 서울: 전통문화연구회, 2016

Coin Marketplace

STEEM 0.15
TRX 0.03
JST 0.025
BTC 12156.53
ETH 378.09
USDT 1.00
SBD 0.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