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눈물

in #stimcitylast month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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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드라마도 이렇게 만들면 막장이라고 욕 들어 먹는다. 오세훈 덕에 시장이 된, 아니지 오세훈과 안철수 덕에 시장이 된 그가 가고, 그때의 오세훈과 안철수가 붙어서 결국 원래 시장이었던 오세훈이 다시 시장이 되는, 야 유치하다. 누가 대본을 그따위로 쓰나며 조기종영 당할 듯한 이야기가 현실에서 또 벌어졌다. (맨날 벌어진다. 현실은 얼마나 강력한 막장드라마인지. 어른들이 뉴스만 보는 이유이다.) 그리고 그는 출구조사가 발표되자 또 눈물을 흘렸다.



그는 자주 운다. 그래서 오세훈의 눈물은 자주 조롱거리가 된다. 그런데 이번의 눈물은 쫌 그랬다. 그에게는 지난 10년의 고단함이 한 번에 해소되는, 그러나 마냥 기뻐하거나 한없이 좋아할 수만은 없는, 만감이 교차하는 눈물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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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책까지


유년기에 아버지의 부도를 겪고, 전기와 수도가 들어오지 않는 달동네에서 자랐다.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 학비를 걱정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집주인이 가족들을 쫓아내는 경우가 잦아 국민학교를 4곳이나 다녔다. 해지기 전에 공부하고, 해가 지면 잠에 드는 생활이었다고 한다. (나무위키)



왜들 하나같이 이럴까? 그 진영의 아이콘들은 오히려 저렇다. 찬란한 스펙에 어울리는 대단한 배경을 가졌을 듯 보이는 외모는 보기와는 달리 영양실조 때문에 공부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을 정도로 힘든 어린 시절을 숨기고 있다. 게다가 그도 역시 (좌파?) 시민단체 출신이다. 환경연합과 민변은 그에게 세상을 열어준 데뷔 무대였다. 그러니 욕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대문이나 잘 단도리 해라.


변호사로서 주목받게 된 것은 이른바 일조권 소송 사건이다. 1993년 인천의 경남아파트 일부 세대에서 대낮에도 전등을 켜야 할 정도로 그림자에 가려 일조권이 침해되었다며 단체 행동에 나선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주민들의 대리인으로 등장한 사람이 바로 당시 33세의 오세훈 변호사였다. 오세훈은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13억 원의 배상금을 받아내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일조권이 헌법상 환경권으로 인정되는 판례를 이끌어냈다. 이는 오세훈의 이름을 널리 알렸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문 '환경 전문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가져다주었다.

특히 일조권 소송 사건을 계기로 현 환경운동연합의 대표인 환경운동가 최열 대표와 함께 환경운동연합 창립에 참여하였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환경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환경운동가로서 적극 활동하였다. (나무위키)



찬란하게 떠오르던 그때가 33세란다. 5세 훈이가 그때는 33세였다. (이봐 다들 뭐 하고 있는 거야? 액면가 33세 초과잡!) 그리고 얼마나 잘나갔는가? 30대 국회의원. 40대 시장. 이름과 외모만 화려했던 게 아니다. 그는 성과도 남달랐다.


임기 중 '오세훈 3법'이라 불리는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정당법 개정안을 내놓아 세간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선거 공영제, 비례대표제 실시 및 지구당, 정당 후원회 폐지가 주된 내용이었다. 기존에는 후원의 상한액이 사실상 없다시피 해 후원자에게 설설 기는 것이 기존의 정치 문화였는데 오세훈 3법으로 후원 상한액을 500만 원으로 설정해 이런 관행을 근절할 수 있었다.

이 중에서도 특히 기업의 정치자금 후원을 금지한 정치자금법 개정안은 여야를 막론하고 반발이 심했다. 하나 의외인 것은 통상적으로 보수인 한나라당보다 진보 성향인 새천년민주당(이후 열린우리당)에서 반발이 심했다는 것. 한겨레 등 진보 성향 언론들은 개혁에 비교적 소극적이던 한나라당이 오히려 파격적인 안을 제시하는데도 진전이 안 된다며 민주당을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선거를 앞두고 똥줄이 탄 열린우리당의 천정배 간사가 오세훈의 제안을 전격 수용하여 여야 합의로 개정되었다. 이때 열린우리당 정동영 대표는 선거 후 다시 해당 법안을 원상복구시킬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국민 여론의 반발이 커 '오세훈 3법'은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이렇듯 강력한 정치개혁 법안 등을 통과시키며 '차떼기당'이라고까지 불렸던 한나라당의 이미지를 쇄신하다, 이후 '5공 용퇴론'을 주장하며 당시로써는 획기적이게도 다음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공천을 위해 당론에 따라 상식과 괴리된 발언을 해야만 하고, 생계를 위해 후원자 앞에서 을이 되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국회의원 시절보다 그 전 변호사 시절 수입이 수 배 이상 많았다고 한다.



보좌진이 쓴 듯한 나무위키의 기록이니 판단은 각자 해라. 하지만 팩트가 아닌 건 아니다. 이쯤 되면 누가 적폐인지 아리송하긴 하다. 어쨌거나 그는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기억하는 이들이 없으리라. 그가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자였다는 사실. 심지어 결혼하고 싶은 남성 순위에서 한때 이병헌을 제치기도 했으며 꼬시고 싶은 유부남 순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단다. 뭐 저따위 조사를. (심지어 중앙언론사다. 그러니 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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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고단한 어린 날을 보상이라도 받듯 그의 청춘은 승승장구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그날의 결과로 그는 무릎 꿇고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를 무릎 꿇린 선별 지원이 이번 선거에서 여당의 패배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여당이 코로나 긴급지원금 대상을 두고 쭈뼛거리다 선별지원으로 선회한 것이 패착이었다는 평가를 들으며, 역시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고 자중지란에 의한 어부지리로 진화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암튼 똑같은 놈들이다.



마법사는 그가 처음 시장에 당선되던 시절, 시장 인수위원회 집무실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다. 부시장 아니 서울시의 마법사 자리 제안을 받은 건 아니고 누가 축사 영상 따러간다길래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따라갔다. 그리고 기억이 나는 건 꽤나 뻗뻗했던 그의 목이다. 어찌나 거만해 보이던지. 태도나 말은 오히려 매너 좋고 그럴싸해 보였다. 그러나 풍겨져 나오는 심상에서의 거만함이란 깔아보는 듯한 눈빛을 감출 수가 없었다. 확실히 그때의 오세훈은 인생을 다 산 듯 보였다. 오히려 지금의 그가 훨씬 젊어 보인달까.



5세 훈이를 철들게 한 건 지난 10년이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거다. (아 물론 아직 검증되진 않았다.) 정치 초년병한테도 진 대통령감 아닌가. 정계 은퇴를 선언해보지도 못하고 폐기 처리되었어야 할 신세가 맞다. 얼마나 되는 일이 없는지. 게다가 망신까지. 그나마 그 진영의 인물난이 그래도 그의 정치생명을 부지할 수 있게 해 준 유일한 운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좀 겸손해졌을까? 세상을 좀 알게 되었을까? 철은 좀 든 걸까? 60이 되어 다시 찾아온 이 기회는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어쩌면 한국의 케네디를 꿈꾸었을지도 모르겠다. 근사한 외모와 젊은 나이에 얻은 명성. 하지만 그에게는 케네디와 같은 가문 배경도 재산도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성공은 모두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이라 기고만장했는지 모르겠다. 그것이 그를 코너로 몰았고 그는 정말 쥐어터졌다. 제대로 쥐어터졌다. 5세 훈이라는 공식 멸칭을 받아내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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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리판이구만



나는 그의 미래를 잘 모르겠다. 한국 정치 역사에 저런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그렇게 흘러가거나 사라지거나 용을 쓰며 들이대다 망가지기나 했지, 누가 저렇게 다시 살아돌아왔던가? (운으로도 말이다.) 그러니 역사로는 그의 앞날을 예측할 수가 없다. 다만 그에게 기회가 다시 주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그가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는 가를 보면 지난 10년이 그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알 수 있으리라. 그런데 이번 선거의 일등공신인 'V' 해프닝을 대하는 그의 자세를 보니, 아 저 진영에도 이제 저런 선수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구나, 흥미가 생겨나는 대목이었다. 자신을 망가뜨릴 줄 아는 여유. 공격을 받아넘길 줄 아는 마음의 폭. 그건 매사에 발끈하는 저쪽 진영 사람들이 유독 잘 하지 못하던 것들이 아닌가. 5세들이라. (자꾸 5세 거려서 현직 5세들께는 미안하다. 그대들은 순수하다.)



어쨌거나 5세 훈이의 서울 시장 당선으로 한국 정치사에 지긋지긋했던 신화 정치가 막을 내리기 시작하는 듯하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박정희도 놓아주고 노무현도 가게 두어야지. 언제까지 우려먹을 셈인가? 무덤에 침을 뱉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런 면에서 끝까지 태극기 부대를 배제한 김종인 할배의 고집불통은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 그가 아니었다면 조국기 부대들이 얼마나 신이 나서 설치고 다녔을지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난다. 킹메이커로서의 할배의 운은 정말 대단하긴 하다. 실력도 좀 있는 듯. 운도 실력이니까.



개인적으로 한국 정치는 김대중 이후 길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노무현은 너무 빨랐고 이명박은 빼고 박근혜는 불쌍하다. 김대중까지의 정치는 각자의 역할에 필사적이었고 공과를 떠나 정반합, 물극필반의 극단적 균형을 필사적으로 이루어 냈다. 그러나 21세기 초반의 리더들은 모두 얼마나 아마츄어들이었던지. 팔아먹을 건 과거뿐이요. 기대고 있는 건 발목을 잡아 대는 팬덤뿐이니. 나라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겠는가. 국민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 거라고 하면 우리는 다 쪽팔려야 한다. 자기 반성 좀 하자. 성과도 없이 깃발만 들고 설쳐도 먹히는 나라에서 BTS가 어떻게 나왔을까? 참 연구대상이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환멸을 겪어봐야 알지. 먹어봐야 짠지 싱거운지 아는 민족이니. 그대들의 영웅이 오즈의 마법사에 불과하다는 걸 꼭 오즈까지 가봐야 알 수 있는 거겠지. 그 과정에서 머리와 심장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면 다행이다. 나아갈 수 없다면 털고 가기라도 해야지.



그나저나 그쪽 진영은 이제 뭘 팔아먹을까? 팔아먹을 거 없긴 반대쪽도 마찬가지이긴 하다만. 그럼 누가 뭘 들고 새로 나타날까? 기세등등한 윤석열은 검 말고 뭘 들고 있기는 한 걸까? 방패도 있어야 할 텐데. 방패는 저절로 생겨나는 게 아니다. 김대중까지의 그들은 모두 방패를 얻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걸었다. 그게 쿠데타든 목숨을 건 단식투쟁이든 테러든 말이다. 그러나 쭈뼛거린 이들은 타의에 의해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방패가 아닌 팬덤은 그들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 패대기를 친다. 그걸 5세 훈이는 이제 알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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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래도 뭘 걸어본 사람이다. 뭘 거는 것도 보통의 용기로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의 그는 뭘 걸어야 방패를 얻을 수 있는지 모르고 검만 들고 설치다 자해를 해댔다. 검은 자신에게 겨누라고 주어진 게 아니다. 검은 적에게. 그리고 적이 겨눈 검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방패는 저절로 생겨난다.



마법사는 이제 선동의 깃발이 아닌 날이 선 진짜 검과 오와 열이 흐트러지지 않는 참된 방패를 보고 싶다. 독재와 민주의 검이 쨍쨍하게 부딪히던 시절. 가난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서로에게 방패가 되어주던 시절. 그때의 에너지가 우리 사회에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고 이 세기를 떠나고 싶다. 말만 무성한 깃발들은 모조리 분질러 버리고 검과 방패로 무장한 니들을 보고 싶다.



여보게 그대,
바위에 박힌 엑스칼리버를 뽑아 볼 텐가?
쏟아지는 화살 속에서
우리를 둘러싸는 방패들과 함께 진격해 볼 텐가?



그렇다면 눈물은 그만 짜고
실체를 보여라.
5세 훈이 말고 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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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다시 오세훈이라니...
거참 놀라운 세상입니다. ㅎㅎ;

돌고 돌아 이명박근혜노무현이 아니길 바랍니다 .

'나'에게 꾸짖음을 주시는 내용이었네요. 반성을 해봅니다. 저도 깃발만 나부꼈던 것 같습니다 ㅠㅠ 살아있다면 따라야지요^^

계속 머물러 주세요. 시대의 변화를 일으킬 이들이 이곳에서 자라나도록 말이죠.

제가 한 20년 정도 머물러 볼까 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