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랄 리포트 춘자 _ 13 고단한 꿈 생활

in #stimcity3 months ago


나는 여전히 나지만, 다른 버전의 내가 되었다. 혹은 다른 차원의 레이어가 여럿 추가되었다. 겹겹이 쌓인 레이어를 하나로 통합하고 싶다. 그것만이 이번 생의 목표다.

나의 꿈은 어딘가 달라졌다. 꿈을 꾸다가 눈을 감은 채로 잠에서 깨어나면 꿈속에서 보았던 장면이 눈꺼풀 안쪽에 빠른 속도로 재생되곤 한다. 그럼 캄캄한 극장 관객석에 앉아 영사기로 쏘아 보낸 스크린 위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꿈이란 이미지가 아니라 관념 덩어리라고 여겨왔는데 마치 빛의 잔상처럼 눈꺼풀 아래 맺히는 선명한 이미지를 확인하고는 어떤 꿈은 자는 동안 이루어진 실제의 시각 경험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지난 크리스마스이브를 떠올리면 선릉 어느 카페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재생되고, 지금 당장 눈을 감으면 조금 전까지 보고 있던 장면의 잔상이 눈꺼풀 아래 맺히는 것처럼. 기억은 관념이고 잔상은 이미지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난 후, 머릿속이 아닌, 눈앞에 재생되는 꿈을 느끼고는, '아, 내가 눈을 뜨기 전까지 실제로 그곳에 있었구나, 그 장면을 보고 있었구나, 그곳에 다녀왔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모든 꿈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어떤 꿈은 그렇다. 이와 같은 경험을 말로 설명하는 과정이 때로는 너무 지독하다. 한 줄을 써 내려가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리고, 나는 몹시 답답해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이심전심'도 말하고 듣지 않아도 전할 수 있다는 뜻일 뿐, 애초에 내 마음도 네 마음도 무엇인지 알아차리려면 최종적으로는 언어화해야 가능한 것 아닌가! 언어의 미로에 갇힌 듯한 기분이 든다. 아아, 언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노트북을 덮고 머리를 흔들며 막춤을 추고 싶어진다. 내게 막춤은 언어로부터 해방되어 트랜스 상태에 도달하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다. 막춤은 몸으로 내뱉는 방언이다.

깨어있는 동안 오래전에 꾸었던 꿈이 갑자기 떠오르기도 한다. 그게 너무 선명해서 꿈이 아니라 실제로 언젠가 가보았던 곳, 만났던 사람 혹은 있었던 일이 아닌가 가끔 헷갈린다. 잠시 기억을 더듬으면 가보지 않은 장소, 만난 적 없는 사람,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라는 걸 곧 깨닫는다. 갑자기 떠오르는 꿈이 간밤의 꿈이라면 그 깨달음이 낯설게 다가오지 않을 텐데 오래전 꿈이기 때문에 아주 이상한 기분을 느낀다. 사실 그게 간밤의 꿈인지 며칠 전의 꿈인지 작년의 꿈인지 알 방법은 없다. 잠에서 깨어난 직후에는 대체로 눈 뜨기 직전의 꿈만 기억나기 때문에 나중에 떠오른 그것이 미처 기억해내지 못한 지난밤 꿈의 조각일 수도 있지만, 내 느낌은 분명 그것이 ‘오래전에 꾸었던 꿈'이라고 말한다.

그 조각을 건져내면 연결된 다른 조각까지 같이 딸려온다. 처음에는 정지된 화면이 떠오르고, 그리고 이동하고, 다른 장소로 연결되고, 사건의 전과 후, 시간의 흐름이 생겨난다. 조각은 다른 조각들과 연결되다가 하나의 이야기를 이룬다.

예를 들어, 시외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가고 있는 나, 버스 차창 밖으로 흐르는 풍경,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내려선 정거장, 정거장 표지판에 쓰인 낯선 동네의 이름들, 도착 시각과 배차 간격, 쇼핑몰과 극장이 모여있는 사거리, 쇼핑몰의 계단을 한 층씩 올라 내부를 구경하고, 집에 돌아오기 위해 막차 시각에 늦지 않게 다시 정거장으로 이동, 버스가 없다, 근처까지 가는 다른 버스가 있나 확인, 그러다가 '응? 어디지? 진짜 갔던 곳인가?', 잠깐 생각하다가, '아, 꿈 맞구나'. 좀 더 자세하게 기억해내려고 애를 쓰면 보이지 않았던 디테일이 하나씩 추가된다.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억해내는' 것이 맞다. 꿈에서 자주 가는 몇 군데는 영화 인셉션에서처럼 지도를 그려볼까도 했지만, 관두었다. 아무리 꿈에서도 산다지만 잠들어 있는 내내 꿈속에서 이곳저곳을 다니는 건 퍽 고단한 일이기 때문이다.


Sort:  

저는 언어를 통해 어떤 생각을 투과시킬 /붙잡아놓을 수 있다고 믿어요. 완벽하게 모든 것이 다 잡힐 수는 없겠지만, 그걸 통해 다시 실마리를 얻고 부풀려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저는 언어의 속박을 편안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ㅎㅎ
(그나저나 막춤이라니!)

와 정말이지 정확히 그 마음이에요! 글을 쓰는 순간에는 늘 단 하나의 간절한 목적이 있어요. 날아다니는 이 생각을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으로 써요. 어떤 생각은 글로 담아도 여전히 뿌옇지만 q님 생각처럼 실마리가 될테니 쓰고 나면 제법 후련해요. 막춤 추면 날아갈듯 가벼워지고요. :-)

아... 이 아스트랄한 세계! 막춤추는 동글님 상상만해도 심장이 시원해지고 막 기분이 좋아져요.

눈을 감고 춤을 추면 정말 심장이 시원해져요! 춤을 추는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 아름답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