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든 갈 수 있는 튼튼한 지느러미로 나를 원하는 곳으로 헤엄치네

in #stimcity3 months ago




흐르지 못한 이야기가 어느새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맨날 이래! 이야기 덩어리가 몸집을 키우면 눈길을 돌리는 곳마다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에 일상에 방해가 된다. 렌즈를 가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자꾸만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손가락처럼. 이렇게 거치적거릴 때까지 놔두면 안 된다고 늘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여유가 없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 대화를 통해 얼마든지 풀어낼 수 있지만, 되새김질해서 글로 토해 내야 이야기가 내 안에서 한 차례 흐르는 기분이 든다. 그러면 언제든 꺼내어 쓸 수 있다. 비로소 아카이빙! 그 작업을 미뤄두다가 저 까마득히 깊숙한 곳에 묻혀 이제는 찾기도 힘들어진 이야기들이 너무 아깝다. 나 진짜 이야기 부자인데, 풀어놓지 않은 이야기보따리가 한가득인데, 빛나고 향기로운 순간이 정말 많았는데, 어둡고 질퍽거리는 시간도 있었는데, 내 인생 진짜 재밌는 영화, 흥미진진 소설이었는데, 아유 아까워! 그래서 언제부턴가 그런 순간을 가능한 한 열심히 글로 남기려고 하고 있다. 그 시작을 스팀잇과 함께했으니 이곳이 정말 소중하다.

지난주엔 6년 동안 단 한 번 안부조차 묻지 못했는데 촘촘한 타임라인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공유하며 살아온 것처럼 느껴지는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다.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는 기다리는 동안 인스타그램에서 그들의 지난 시간을 훑어봤다.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인 사진과 글을 보고 읽는데 가슴이 뛰고 소름이 돋았다. 서로 보지 못하고 사는 동안에도 그들이 늘 생각하고 꿈꾼 대로 살고 있었다는 사실에 완전히 매료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과 마주 앉았다. 워낙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만남은 그 자체로 기뻤지만, 마른 땅이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서로의 말을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얼마나 짜릿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주문한 음식이 테이블 위에 차려지고 한참이 지나도록 누구도 첫술을 먼저 뜨지 못한 채로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멈출 수가 없었다. 그들의 지난 시간은 놀라웠고 동시에 당연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그들에게 정말 고마웠다. 나는 또 하나의 증거를 수집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은 자유, 갖고 있던 생각을 바꾸는 일도 자유, 생각대로 사는 것도, 그 반대도 자유다. 생각과 삶의 내용이 일치해야 생각대로 사는 건 아니다. 다만 같은 길 위에 있느냐의 문제다. 생각은 저만치 앞서있고 삶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지라도 같은 길 위에 있다면 생각대로 사는 거다. 그러다 삶이 생각을 따라잡기도 하고 삶이 생각을 앞서기도 한다. 조바심이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갈림길에서 생각과 삶이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하면, 그래서 각각 다른 길 위에 들어섰다면, 그대로 계속 멀어지거나 아주 먼 길을 돌아와야만 다시 같은 길 위에 설 수 있게 된다. 그런 선택은 하고 싶지 않다. 생각한 대로 꿈꾼 대로 산다는 건 정말 숭고한 일이다! 이렇게 삶으로 자기 생각을 증명하는 사람이라면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생각에 동의하느냐 마느냐는 다른 차원의 문제, 닮은 점을 발견한다면 기쁨은 두 배, 세 배. 아, 정말이지 그런 사람을 가까운 곳에서 만나는 건 행운이다. 그동안 스팀잇에서 그런 행운을 많이 그러모았다. 역시 난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들은 라다크에서 카페를 열었던 첫해, 그러니까 11년 전 카페 두레의 손님이다. 한 달도 넘게 라다크에 머무르며 매일 같이 카페를 찾았기 때문에, 함께 밥을 지어 먹고 술잔을 기울이고, 기타 치고 피리 불며 노래도 부르고, 여기저기 나들이도 다니고, 가진 생각을 주고받으며 마음도 나누었던 사람들이다. 우리는 루시드폴의 고등어를 자주 불렀다.

지리산 자락에 집을 짓고 사는 그들의 초대로 다음 주에 나와 젠젠은 지리산에서 지내게 되었다. 라다크에서 매일 같이 불던 피리는 돈이 없어서 책을 팔았을 때 같이 팔아버렸는데, 위즈덤 레이스를 시작했던 때에 마법사님이 다시 피리를 사주었다. 마침 젠젠도 마법사님에게 피리 선물을 받았으니 이번에 같이 가져가기로 했다. 내일은 연습 좀 해야겠다. 지리산에서의 이야기도, 그들의 빛나는 이야기도 너무 늦지 않게 이곳에 전할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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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느러미는 날개라는 생각을 방금까지 하고 있었는데 이 글을 읽어서 반가워요 동글님!

생각은 저만치 앞서있고 삶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지라도 같은 길 위에 있다면 생각대로 사는 거다.

젠젠님과 라라님의 피리 지리산 여행 너무 기대되는 걸요! 꿈을 팔 수 있다면 라라님 꿈은 희귀소장본으로 구하기도 어려울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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