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Blue

in #stimcity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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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Blue


밤새 비가 쏟아진다. 바람에 천둥번개까지, 가을을 보내는 비가 지나치게 요란한 편이다. 사실 그 덕분에 일을 하다 말고 근사한 시간을 보냈다. 근사한 시간이라고 해 봤자 별거 없다. 그냥 생각 없이 느끼기만 하는 거다. 요새는 자는 시간 빼고는 언제나 생각 중이었기 때문에 정수리는 늘 뜨겁고 오른쪽 관자놀이 부근이 틈만 나면 지끈거렸다. 지하철을 타면 열차 바퀴와 레일이 만들어 내는 마찰음이 두개골을 뚫고 뇌로 전해지는 것 같아서 수시로 귀를 막았다.

그런데 이 밤의 빗소리가, 바람소리가, 천둥소리가 너무 폭신하고 보드랍다. 뇌의 주름이 하나하나 펴지는 기분이 든다. 눈을 감고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이불에 좋아하는 꽃향기를 묻혀 놓고 킁킁대다가 배꼽을 손바닥으로 덮고 한참 동안 긴 숨을 쉬었다. 그리고 결국 남은 일을 미뤄두고 글까지 쓰게 만들었으니 이 새벽의 비는 얼마나 강렬한 영감인지.

지난여름 내내 기다리던 계절인데 만져 볼 새도 없이 보내 버리고 말았다. 자전거를 더 많이 타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이제 곧 캐럴이 곳곳에서 들려올 테고 새벽의 가을비보다 훨씬 더 근사한 새벽의 함박눈이 소복이 쌓일 테니 찾아올 다음 계절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야겠다.




인도 스리나가르의 달 호수와 자전거 청년을 찍은 사진에 <Blue, Blue>라는 제목을 붙이고, 그런 김에 이 글에도 <Blue, Blue>라는 제목을 붙인다. q님의 <Blue, Blue>에 대한 메아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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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보잘 것 없는 끄적임이, 이 멋진 사진의 제목과 글을 빚어내는 데에 아주 약간이나마 일조할 수 있었다니 송구스럽네요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