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톡싱이 필요해

in #stimcity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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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먹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쓰기 전에 정말 그런지 고민했다. 관심 없는 사람 치고 맛있는 거 먹을 때 호들갑을 떠는 편이기 때문에 좀 찔린다. 하지만 호들갑은 성격일 뿐 맛있는 음식을 먹는 기쁨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니 뭘 먹을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아무거나'라고 말하는 건 진심이다. 물론 맛없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만큼 짜증 나는 일도 없긴 하지만.

배고프면 식은땀이 나고 어지럽고 신경질이 나므로 미리 먹어두는 것이 좋다. 보통 하루 두 끼, 입맛이 없거나 귀찮으면 한 끼만 먹기도 한다. 먹는 일에 별로 관심도 없는 주제에 가리는 음식이 많다. 아는 맛이 절대적으로 좋다. 입맛에 맞는 것만 먹고 새로운 시도는 좀처럼 하지 않는다. 다섯 살 때부터 안경을 써야 했던 건 일차로 유전, 후천적으로는 분명 편식이 문제였을 것이다. 안 먹는 음식 중에는 한 번 먹어보고 입맛에 맞지 않아 다시는 먹지 않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들이다. (나의 기준에서) 이상하게 생긴 것,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씹는 느낌이 불편한 것, 먹기 귀찮은 것(과일을 제외하고 까먹거나 발라먹어야 하는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생굴은 이상하게 생겼고, 이상한 냄새가 나며, 씹는 느낌이 불편한 대표적인 불호의 음식이다. 딱 한 번, 대학 시절 술자리에서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입에 넣어본 적이 있는데, 너무 충격받아서 바로 뱉었던 기억이 있다.

2월 초에 지리산, 정확하게는 남원시 산내면, 어쩌다 순천, 그리고 완도까지 다녀왔다. 서울을 떠나있는 동안 평소와 다른 패턴으로 먹고 마셨다. 먹는 일에 집중했고, 하루 세 끼(혹은 그 이상)를 먹었고, 먹지 않던 것을 먹었다. 먹는 행위는 눈을 뜨자마자 시작되어 잠들기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덕분에 매일 밤 기절하듯 잠들 수 있었다. 소화기관이 24시간 활동 모드를 유지하느라 엄청난 체력을 소모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먹는 일에 심드렁하고 게다가 지독한 편식을 하는 내가 그 일주일을 통해 먹는 일에 좀 진지해졌다.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가 더 많더라도 되도록 신경 써서 챙겨 먹고 싶다. 몸과 정신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건 당연한 말이지만, 내 몸은 유난히도 그렇다. 스트레스나 피로는 반드시 몸에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킨다. 거의 예외가 없고 즉각적이라 마치 스마트폰 푸시 알림 같다. 늘 부지런하게 내 마음을 읽어주는 몸에게 고마우면서도 고마운 만큼 잘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도 든다. 게다가 엄살왕이라서 몸의 작은 변화도 잘 알아차리는 편이다. 채식을 하면 내 몸에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알고 싶다. 큰 뜻은 없고 단지 나의 삶에 유익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겨서 그렇다. 소고기를 먹으면 소화시키느라 밤새 배가 꼬르륵거리고 풀때기나 과일로 배를 채우면 속이 편안하니까. 완전히 고기를 끊겠다는 건 아니고 디톡싱의 차원에서 한 달 정도 채식을 해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직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이 글은 어제부터 쓴 건데 사실 어제도 삼겹살을 먹었다. 데헷.

몇 년 전에는 피부를 위한 디톡싱을 반년 동안 해본 적이 있다. '우츠기식 피부관리'라는 것인데 물로만 세수하고 일체의 화장품을 사용하지 않는 피부관리법이다. 얼굴을 뒤덮는 각질을 다스리기 위한 바셀린과 무기적 자외선 차단제만이 허용된다. 사실 내 피부는 좋은 편이고 평생 얼굴에 발라온 화학물질에 대해 돌연 거부감을 느낀 것도 아니었다. 좋아하는 언니가 하고 있었기 때문에 호기심에 '나도 해볼래' 한 것뿐이다. 호기심에 시작한 일치고는 꽤 오래 한 셈이다. 평소에 화장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라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문제는 각질이었다. 초반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이 왜 이렇게 푸석하냐고 한마디씩 했다. 나도 거울을 보면 당장 클렌징폼으로 눈코입이 사라질 때까지 얼굴을 빡빡 문지르고 싶었으나 어딘지 모르게 와일드한(?) 느낌을 주는 그 얼굴에 이내 적응하게 되었다. 아토피로 오래 고생하던 친구는 나를 따라 우츠기에 동참하다가 노푸까지 했는데 몇 주 뒤에 새 머리카락이 잔디처럼 빽빽하게 자라난 정수리를 보여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도대체 샴푸가 두피에 무슨 짓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어쨌든 우츠기식 피부관리는 미용이 아닌 치료 혹은 개선이 목적이어서 애초에 별문제 없는 내 피부에는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좋았던 점은 세수할 때 덜 귀찮다는 거? 외출할 때 씻고 옷 입고 30초면 준비가 끝난다는 거?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다시 화장을 하고 싶어져서 그만두었다. 반년 만에 비비크림을 바르고 외출했던 날은 어째서인지 무척 설렜다. (나 화장 좋아하네...) 좋은 경험이었다. 내가 알게 된 것은 세상엔 너무 많은 세안 및 목욕 제품이 있고, 대부분이 피부에 별 쓸모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후 클렌징, 스크럽, 필링, 바디워시 등의 제품은 쓰지 않는다. 비누와 샴푸만 쓴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채식을 하게 된다면 이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이왕이면 공장식 축산업에 반대하는 마음마저도 갖고 싶지만, 그런 마음으로 간헐적 채식을 한다는 것은 어딘가 좀 우스꽝스럽고, 최근 생긴 채식에 대한 관심은 오로지 내 몸과 연관되어 있으니 솔직해지기로 한다. 이건 어떠한 주의도, 어떠한 이즘도 아니다. 사실 '주의'니 '이즘'이니 하는 말에는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기도 하고.

요 몇 년 사이 '나는 회색분자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어렸을 때는 적극적으로 어떤 입장에 가담하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어떠한 입장도 취하지 않고 대부분 이슈를 팔짱 낀 자세로 바라보게 된다. 세상에 냉소만큼 한심한 태도도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당신 진짜 맞아? 어디 한 번 증명해봐’ 하며 일단 의심하고 보는 것이다. 대안도 없으면서 모순이다, 위선이다 까대는 건 내가 생각해도 좀 재수 없는 태도다. 난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걸까? 삐에로, 쇼쟁이, 낭만꾸러기들이 날 이렇게 만들었다. 가끔 콧방귀나 뀌며 팔짱 낀 채로 서 있는 나를 보면 슬퍼진다. 나도 좋은 뜻, 착한 의도, 정의로움 따위를 믿고 따르던 때가 있었는데. 언제든 등 돌릴 수 있고, 그럴 때마다 갖다 댈 핑계도 대안도 무궁무진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런 것 따위 허상에 불과하다. 우습게도 그 변명들은 종종 삶 앞에 무릎 꿇고 비는 소리다. 삶은 그렇게나 무지막지하다. 이렇게 냉소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는 진짜배기들이 조용히 자기 밭을 일구고 있다는 사실은 내게 힘을 준다.

먹는 이야기 하다가 어쩌다 이렇게 길게 주절거렸는지 모르겠다. 채식에 대한 윤리적인 이야기들이 내게는 여전히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 그냥, '핵존맛'이어서. 그것이 좋아서 하는 채식의 당연한 이유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언젠가 버거킹에서 소고기 패티보다 더 맛있는 콩고기 패티로 버거를 만든다면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 그럼 나 같은 인간도 생태주의니 동물권이니 하는 큰 뜻에 냉소 없이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써놓고 보니 얼핏 비아냥처럼 들리지만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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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할 수 있는 만큼 하는거죠 뭐.. 죄책감이 그 할 수 있는 일을 늘리는 경우도 있긴 있구요.
새 버거킹 패티가 괜찮다는 말을 들어서 한 번 시도해 보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쓸 때는 버거킹 플랜트 와퍼 소식을 모르고 있었는데 오늘 기사를 읽었어요. 맛 보셨나요? 저는 이 글을 쓰고 나서 삼겹살을 또 먹었답니다... 봄이 오고 입맛이 막 돌기 전에 한 달 채식 프로젝트를 어서 시작해봐야겠어요.

소고기가 아니라 삼겹살을 드신 것만 해도 더 나은거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ㅎㅎ
전에 대체육으로 만든 타코 먹어봤는데 맛있어서, 와퍼도 시도해봤는데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겁먹고 BBQ 와퍼부터 시도해봤는데, 그냥 플랜트와퍼도 먹어봐야겠다 싶습니다.

얼마 전에 난생 처음으로 콩고기를 시도했는데 너무 맛이 없어서 이걸 먹느니 평생 버섯을 먹은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전에 콩고기 돈까스를 먹어본 적이 없는데 지독한 맛이 나서 그 이후로 먹지 않았어요. 콩고기나 대체육 같은 이상한 말 때문에 그것들이 더 맛없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고기의 맛을 생각하고 먹게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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